
안덕면 창천리에 자그마한 산이 있는데, 그 모습이 군막을 쳐 놓은 것 같아 군산이라고 부른다.
아득한 옛날에는 이 자리에 군산이 없었다.
지금의 창천리와 같은 큰 마을도 없었다.
그 때, 강씨 선생이라는 이가 이 동네에 살았는데 학문이 고매하여 이름이 높았다.
그는 제자들을 모아 글을 가르쳤는데, 명성이 높았으므로 멀리에서까지 글을 배우러 찾아 들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둘러 앉히고 글을 가르치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갓 들어온 제자에게 글을 읽히며 ‘하늘 천(天)’하면 문 바깥에서 ‘하늘 천’하고 따라 읽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상하여 바깥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다시 다른 제자를 앉혀 ‘공자왈’하면 다시 바깥에서 ‘공자왈’하는 소리가 돌려온다. ‘거 이상하다’하고 바깥을 잘 살펴보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글을 따라 읽는 소리가 3년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선생은 밤잠이 깊이 들었다. 아마 자.축시쯤 되었을까.
“선생님, 주무십니까?”
“거, 누구?”선생은 잠결에 대답하였다.
“저는 동해 용왕의 아들인데, 선생님한테 글을 3년간 공부했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하직하고 고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마는, 저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일이 있거든 말씀하십시오. 힘껏 은혜를 보답하고자 합니다.”
선생은 기이한 일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신을 차려 대답했다.
“난 남이 해 준 끼니먹고, 남이 해 준 옷 입고, 남이 해 준 담밸 피우니 부족한 것이 없다. 원할게 있을 리가 있나?”
“그러면, 선생님이 글 가르치실 때, 큰 비가 오면 저 내가 내리는 소리 때문에 글 가르치기가 불편하다고 항상 말씀하시던데 그걸 막아 드리면 어떻습니까?”
“그게 되면 좋지만, 될 수가 있겠느냐?”
당시는 지금의 창고내가 바로 집 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비가 크게 오기만 하면 냇물이 터져 내렸었다. 그러면 그 냇물 소리에 글 소리가 뒤섞여 가르치는 데에 지장이 있었던 것이다.
선생이 냇물 소리를 막아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치자 동해 용왕의 아들은 고쳐줄 것을 약속했다.
“제가 돌아간 후 칠일 동안 풍운 조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방문을 꼭닫고 바깥을 보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큰 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단단히 타이르고 동해 용왕의 아들은 작별하고 떠나 버리는 것이었다.
잠시 있으니, 과연 뇌성병력이 천지를 진동하여 하늘과 땅이 맞붙는 것 같았다.
선생은 문을 꼭 닫고 시종 엎드려 있었다.
뇌성벽력은 칠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이레째가 되어 가니 벽력 소리도 차차 뜸해지고, 캄캄했던 천지도 다소 밝아오는 듯했다. 선생은 이레 동안이나 엎드려 있으려니 뼈마디가 다 굳어지는 듯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일어나 바깥을 내다봐도 괜찮겠지’
바깥 일이 궁금한 김에 일어나서 문 틈으로 바깥을 살짝 보았다. 그 순간 불티가 휭 날아오더니 그만 눈에 맞아 한 쪽 눈이 까져 버렸다.
여드레째가 되니 벽력 소리가 멎고 안개가 걷히어 천지는 조용해졌다.
이 때는 고려 목종때였다.
조정에서 제주도에 천재지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 관원이 조사하러 내려왔다. 며칠간 샅샅이 조사해 보니 칠일간의 풍운 조화로 해서 장천리에 산이 하나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관원도 이 산이 어떻게 하여 생겨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때 천태산 마고할망이 “이 산은 중국 곤륜산의 왼쪽 봉우리인데 메후리(회오리바람)에 쫓겨서 여기로 날아와 붙은 것이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중국의 산이 여기 군산이 이 자리에 생김으로 해서 창고내는 산 건너 편으로 옮겨져 흐르게 되었고 그래서 강씨 선생은 냇물 흐르는 소리의 시끄러움을 면하게 되었다한다.
일설에 따르면 군산은 중국의 서산이 옮겨 온 것이라 한다.
중국에는 본래 서산이라는 산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산이 없어져 버렸다. 그 후 중국 사람이 제주도에 다녀 간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이 창천리 앞을 지나다가 군산을 보고는 “중국에서 없어진 서산이 바로 여기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산을 처음에는 서산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산 모양이 군막을 쳐 놓은 것 같다해서 ‘군산’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