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마을 서귀포 상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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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상예 마을은 약 2천년 전에 개깍으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상예 마을에 있는 상예동 바위그늘집자리(속칭 '볼래낭소')와 상예동 고인돌 등등이 2천년 전에 선사유적지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지인 상예동 적석시설물(積石施設物)과 고려 시대에 목종 10년(1005)에 굴메[상서로운 산(瑞山)]의 용출, 숙종 10년(1105)부터 충렬왕 26년(1300)까지 열리[延來.猊來]라 마을 이름을 불러 왔다.더욱이 충렬왕 26년(1300)부터 조선 시대 태종 16년(1416)까지 예래현(猊來縣)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다가 태종 16년(1416)부터 영조 21년(1745)까지 예래촌(猊來村).예래리(猊來里)라 마을 이름을 불러 왔다. 영조 21년(1745)부터 예래리(猊來里)가 분리되어 상.하예래리(上.下猊來里)로 고종 7년(1860)까지 이어졌다. 이리하여 고종 7년(1860)부터 1981년 7월 1일까지는 상.하예래리(上.下猊來里)가 상.하예리(上.下猊里)로 바뀌었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현재까지 상.하예동(上.下猊洞)으로 마을 이름을 부르고 있다.

    마을구성

    본동(존좌동)

    존좌동(尊坐洞)으로 부르는 본동은, 탐라지도와 해동지도에 존자평(尊者坪) 또는 "존좟뱅듸"로 표기된 곳이다. 이 일대의 지대가 평평하고 돌담조차 없다하여 "병듸"라는 넓은 벌판을 의미한다. 1899년도에 발간된 "대정현지"(규장각 소장본) 도로편에 보면 <대정현 관문에서 동쪽 정의현 경계까지 큰 도로가 뚫여 있는데 나수, 존자평, 천지담, 고둔을 지나 병참까지 이르며 23km가 된다>라고 하면서 존자평이 나오는데, 바로 "존자병듸"를 가르키는 것이다. "존자"는 본래 불교용어로서 부처님의 뛰어난 제자를 말하는데, 여기에서의 존자의 의미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존자를 한자 존좌(尊坐)로 고치고 (목사가 순행할 때 쉬었던 곳)<한글학회, 1986 : 495>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민간어원설에 불과하다. 본동은 1979년도에 취락구조개선사업으로 지금 현재 100여가구가 살고있으며 본 상예2동의 중심동으로서 마을회관과, 노인회관, 청, 부녀회관, 정보화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가가동

    거북이형상의 오름이 덧붙혀 있다하여 더할 가(加)를 써서 "더더오름"이라 하는 오름앞에 위치한 가가동은, "뒷가름못"을 중심으로 150여호가 살고 있다가 4.3사건으로 전부 흩어져 살다가 취락구조마을로서 조성되었으며, 행정구역상 상예2동에 속해있고 예래3통 3반이며 북쪽으로 우회도로가 개설되 있으며, 본동과의 거리가 약1㎞정도되며, 15가구내외가 사이좋게 모여살고 있다.

    우남동

    우보악(牛步岳)오름 남쪽에 1978년에 취락구조 개선마을로 형성된 마을로서, 북쪽에 서귀포 호텔과 대유랜드가 있으며, 행정구역상 예래3통 4반이며, 30여가구가 살고있는 자연부락이다. 여기에는 경로당과,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